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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흑토벌' | '부부탑' 삼림보호자

2022-10-11 14:56:46

매와 같은 눈을 가진 그들은 매일 높은 곳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며 끝없는 숲의 바다를 주시하고 있다. 그들이 바로 '천리안(千里眼)'이라 불리는 삼림방화 감시원으로 삼림방화전선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들이다.

금추 9월, 룡강삼림지구의 림해는 선경으로 변해 곳곳에 가을의 푸르름과 타오르는 불길로 장식된 한폭의 단아한 그림과 같다. 가을철 방화기에 접어들자 삼림방화 감시원 왕류양(王刘洋)과 안해 서분(徐盼)은 9월 15일 점하(沾河)림구 점중(沾中) 67호 전망대에 작업장비와 생활물자를 가지고 어김없이 나타나 망망한 삼림을 두달동안 감시하며 지키기 시작했다.

왕류양의 어머니는 수 많은 영예를 지니고 있어 림업영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가 바로 전국 '5·1 로동 메달' 수상자, 전국 모범 로동자, 전국 10대 '가장 아름다운 로동자', 중국 생태 영웅, 제19차 당대회 대표인 주채근(朱彩芹) - 룡강 삼림로동자들 마음속의 모범이다. 

림해중의 전망대

삼림방화의 '천리안'

룡강삼림공업그룹 점하림업국유한회사는 수백개의 련못이 작업구역에 흩어져 가로 세로 교차하고 숲과 풀이 련결되여 있어 일단 화재가 발생하면 빠르게 번지고 강도가 높아 진화가 어렵게 된다. 봄과 가을의 방화기간은 다른 삼림지역의 화재위험기간보다 10~15일 더 길다. 작업구에는 점하정자(沾河顶子)와 대평대(大平台) 두곳의 국가급 중점 삼림화재 위험구가 있다.

산림화재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기 위해 전망대가 속속 건설되였다. 감시원은 높은 전망대에 올라서서 망원경을 통해 화재발생 지점을 즉시 발견해 산불이 번지기 전에 진화하도록 해야 한다.

아들 왕류양을 인터뷰한다는 말에 주채근은 "마침 손녀를 데리고 엄마, 아빠한테 가보자"며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점하림업국유한회사에서 왕류양의 670호 전망대까지 차로 2시간 이상 걸린다. 차창 밖으로 한그루 한그루 나무가 스쳐지나가는 것을 보며 주채근의 생각은 당시 삼림방화일선에서 분투하던 시절로 되돌아갔다…

주채근은 1988년 가을 삼림방화기간을 앞두고 같은 림장에 있는 청년 로동자 왕학당(王学堂)과 결혼했다. 신혼생활이 한창일 때 림업국은 청년 직원 중에서 삼림방화 감시원을 모집했다. 그녀와 남편은 시험에 참가하여 나란히 합격했다. 그후 행복경영소(幸福经营所)에서 11㎞ 떨어진 저산(猪山)꼭대기의 451호 전망대에 배치되여 451호 전망대는 점하립업국이 건립된 이래 첫 '부부탑'이 됐다. "당시 점하림업국 최초의 녀성 감시원이 돼 뿌듯했다"고 주채근이 말했다.

451호 전망대는 지면에서 높이가 24m이고 해발고도가584m로 점하작업구에서 세번째로 높은 산인 저산봉우리에 우뚝 솟아 있다. 철제 구조물인 전망대가 울부짓는 산바람에 이따금씩 간간이 흔들린다. 주채근은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며 심리적 장애를 극복하고 전망대에 올랐다. "전망대에 오른 뒤 나는 의도적으로 전망대를 오르내렸으며 10여일 만에 마음대로 오르내릴 수 있게 됐다." 주채근은 처음 전망대를 오를때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전망대가 산꼭대기에 우뚝 솟아있다.

산꼭대기에 세워진 전망대는 해발고도가 높고 기온이 낮으며 난방시설이 없다. 늦가을에는 솜모자를 쓰고 솜저고리와 모피코트를 입고 펠트양말(毡袜)과 솜신을 신고도 추위에 떨었다. 이런 조건에서 주채근은 매일 수백번이상 전망대 밖에서 관찰해야 했다.

작은 전망실에는 작은 침대 하나에 이불, 나무 탁자우에 무전기 등 중계통신설비가 놓여 있고 주채근과 남편 왕학당은 이곳에서 일년 내내 화재상황을 살피고 있다. 봄 가을 두계절의 삼림방화고봉기와 특히 최근 몇년동안 여름 화재예방기간까지 매년 7~8개월동안 전망대에 있어야 했다. 매일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전망대를 지키며 화재 상황을 살핀 뒤 오후 8시 30분 이후에야 전망대에서 내려와 휴식할 수 있다. 화재 위험등급이 높거나 화재 상황이 있을 때는 남편과 함께 밤낮으로 전망대에서 화재상황을 살폈다. 가장 긴 한번은 몇평방미터에 불과한 전망대에서 25일 동안 살았다.

2000년은 가뭄으로 점하림업구에서 처음으로 여름철 삼림방화기간이 생긴 해이다. 봄, 여름, 가을 3계절 방화기의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여 주채근은 고배률 망원경앞에 엎드려 기복이 심한 숲속의 어떤 것이 연기 발생지점이고 어떤 것이 낮은 구름인지를 주의 깊게 관찰하며 다년간 축적된 경험을 통해 4건의 화재 상황을 즉시 정확하게 발견 보고하여 조기 산불 진화에 유리한 정보를 제공했다.

2006년 5월 21일, 남점하작업구의 무인 지역에서 한차례 산불이 발생했다. 주채근은 남편과 함께 1박2일동안 전망대를 지키며 산불을 진화할 때까지 지휘소와 화재 현장 정보를 정확히 전달하는 등 원활한 통신을 보장했다.

2007년 100년 불우의 극심한 가뭄으로 주변 삼림지대에 여름 산불이 발생하자 주채근은 남편과 함께 봄철 산불진화 임무를 마치고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가족과 상봉할 새도 없이 다시 행장을 둘러메고 첫번째 전망대로 돌아왔다. 산불을 진화한 뒤에도 그와 남편은 만일의 경우를 고려하여 계속해 전망대를 굳게 지켰다…

30년 가까이 감시원으로 일하면서 주채근과 남편은 각종 화재를 정확히 발견하고 보고했으며 산불진화에 참가한 차수가 근 100차에 달하는 등 베테랑(老手) 감시원이 되였다. 

대 삼림에 대한 깊은 사랑

삼림에서 야생동물을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주채근은 기자들에게 "전망대에 올어간 날부터 반달가슴곰(黑熊), 산돼지, 늑대와 만나는 일이 종종 발생했는데 놀라기만 하고 위험이 없었고 다치지 않아 다행이였다"고 말했다.

예전에 산에 들어갈 때에는 미리 호신도구를 준비하는 것을 몰랐는데 몇번의 위험을 겪은 후부터는 매일 칼을 휴대하고 호신하여 주채근은 '주대협(朱大侠)'이 되였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 주채근은 은퇴할 때가 되였다. 젊었을 때부터 머리에 흰 서리가 내릴 때까지, 기백이 넘치는 건강한 시절부터 질병에 시달릴 때까지 주채근은 대삼림을 지키며 아무런 원망도 후회도 없이 초심을 변치 않고 "전망대 우에 올라서면 내 마음은 유난히 밝아진다"고 말했다.

'부부탑' 계승

"앞에서 좌회전해서 몇십미터만 더 가면 왕류양의 67호 전망대입니다." 운전기사의 제시로 주채근은 추억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엄마, 왜 따라오셨어요! 몸이 안 좋으신데 집에서 푹 쉬셔야지요." "너랑 서분이랑 보고 싶었어. 과일도 좀 가져왔잖아." 간단한 대화이지만 모자간의 진한 가족사랑이 담겨있었다.

왕류양은 키가 크지 않고 여윈편이며 피부가 거무스름하지만 정력이 넘쳐났다. 어머니와 딸을 본 왕류양과 안해 허분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왜 어머니의 사업을 이어받아 감시원이 되였을까? "아마 이 숲을 사랑했나 봐요. 어쨌든 나는 숲속의 아이였고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살았으니깐요." 가식없이 말하는 왕류양은 약간 수줍어했다.

망원경을 리용해 림해를 살펴보고 있다.

부모님이 전망대를 지키고 있을 때 몇살밖에 안된 왕류양은 부모님과 함께 산에서 살았는데 산에는 그들 가족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함께 놀아줄 상대가 없어서 왕류양은 매일 개미와 놀고 기르는 강아지와 놀고 산속의 산토끼와 놀았다.

"내가 네살때 산토끼 한마리를 쫓아다니다가 길을 잃은 적이 있어요. 당시 부모님이 모두 전망대에 계셨는데 다행히 내가 어려서 얼마 뛰지 못해 나의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오셨어요" 왕류양이 말했다. 이번 '모험'은 왕류양의 머리속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정보 기록

성인이 된 왕류양은 나가서 바깥 세상을 보고 싶었고 부딪쳐보고 싶었다. 나중에 그는 노력해서 훌륭한 료리사가 되여 장춘의 한 대형 식당에서 주방장으로 일했다. 그러던 중 숲으로 돌아오라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엄마 아빠의 망원경을 이어받아 삼림방화 감시원이 됐다.

"그때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솔직히 당황스러웠어요." 한바탕 사상투쟁을 벌인 후에도 왕류양은 어릴때부터 자신과 허물없이 지내온 삼림을 떠날 수 없었고 그는 식당의 간절한 만류를 결연히 사양하고 산속 깊은 곳으로 돌아갔다.

2014년 봄, 곤득기(坤得气)림장에 위치한 455호 전망대에 감시원이 필요했다. 왕류양은 부모와 상의도 없이 자진해 힘들고 무미건조하고 적막한 감시원 일을 선택했다. 공교롭게도 그해 그는 스물두살이였고 어머니 주채근 씨도 같은 나이에 감시원이 됐다.

왕류양이 있는 곤득기탑은 림구 도로에서 5km나 떨어져 있는데 이 5km는 모두 산길이다. 자신의 '짝꿍'인 류씨 할아버지가 년세가 많아 걷기 불편하기 때문에 왕류양은 혼자서 전망대의 생필품 운송을 맡았고 매일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그림을 보고 식별하는 것을 배우고 류씨 할아버지와 경험을 교류했으며 집에 돌아가서는 부모님에게서 점화지 각도와 거리 계산법 등을 배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모자의 계승

2015년 봄, 왕류양은 벼락으로 인해 발생된 화재지점을 적시에 정확하게 발견하고 지도에서 화재지점 좌표와 림업작업반을 정확하게 확정한 덕분에 산불이 재빨리 진화되여 큰 화재 발생을 효과적으로 방지했다.

2016년 왕류양은 결혼했고 아내 서분은 우수한 본과졸업생이여서 다른 직장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왕류양은 매년 두번의 방화기간동안 전망대에서 지내야 했고 부부 사이에 갈라져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서분이도 결국 시어머니처럼 녀성 삼림방화 감시원이 되여 왕류양과 함께 670호 전망대를 지키며 새로운 '부부탑'을 탄생시켰다.

림해와 약속

"아빠, 우에서 뭐해? 내려와서 나랑 놀아줘?" 네살배기 딸이 작은 손을 힘껏 흔들며 전망대 우의 왕류양에게 말했다. 일하고 있는 왕류양은 딸의 부름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자신이 어렸을 때도 이 숲에서 부모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던 기억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부녀가 함께 있으면 언제나 즐겁다.

옆에 있던 주채근은 이 광경을 보고 눈시울을 적셨다. 그는 은퇴했지만 늘 삼림에 대해 걱정했다. 아들이 자신의 손에서 바통을 이어받는 것을 보고 그녀는 더욱 위안을 느꼈다. 이제 어린 손녀도 자라면서 이 삼림과 애틋한 마음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삼림지역에서 화재 예방은 더없이 큰 일이다! 로세대 감시원으로서 산림보호사업을 대를 이어가며 이 큰 삼림의 수호자가 되여 한세대 한세대 더욱 강해질 것을 바란다"고 주채근이 말했다.

라면은 감시원의 주요 식품이다. 

"점심때가 되였으니 집에 들어가서 좀 쉬세요. 우리 여기에는 채소가 없으니 국수를 삶을게요. 다 같이 먹어요." 서분이가 반갑게 인사했다. 

왕류양과 서분이 사는 전망대 아래의 '집'은 방 한칸에 주방이 달린 10여 평방미터밖에 안되는 작은 집이다. 집안에는 구들이 절반을 차지했다. 전망대의 집은 기본적으로 이런 규격인데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밤에는 초불을 켤 수밖에 없다. "지금은 조건이 좋아져 배터리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지만 가전제품은 사용할 수 없다"고 주채근이 기자에게 말했다. 

전망대가 모두 밀림속에 있어 생필품 부족과 용수 부족이 감시원들에게는 가장 큰 골치거리이다. 랭장고가 없어 보관이 쉽지 않은 잎채소와 고기는 감시원들에겐 '사치품'이 되였다.

"왕류양이 있는 이곳은 조건이 괜찮고 림장도로와도 가깝다. 도로에서 십여킬로미터 떨어진 전망대도 있는데 그때마다 생필품과 식수를 도보로 메여 나른다"고 말했다. 주채근은 등짐으로 나르는 생필품에 감회가 깊다. 물통의 물이 시간이 오래 지나 파란 곰팡이가 끼는 경우가 많았지만 버리기 아까워 끓여서 마시기도 했고 목욕은 엄두도 못냈다.

가족이 함께 누리는 단란함

서둘러 점심을 먹고 서분이는 전망대에 올라가 왕류양을 교체했다. 매일 전망대를 오르내려 너무 익숙한 왕류양은 회오리바람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전망대에서 내려왔다. 기자는 방금 전망탑에 올랐을 때 자신의 손이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렸던 것을 떠올렸다. 완전히 대조적이였다.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며 지루하고 단조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데 대도시의 같은 또래와 비교하여 감시원이 된 것을 후회한 적이 있는가 하는 기자의 질문에 왕류량은 "물론 없습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이 큰 삼림에서 살아왔습니다. 이곳의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는 이미 제 뼈속에 깊이 배여 있었습니다. 나도 어머니처럼 진심으로 이 삼림을 사랑하고 작은 힘이나마 다하여 이 삼림을 지켜낼 수 있어 든든하고 영광스럽습니다!"라고 단호히 대답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왕류양은 주저없이 "앞으로 이 사업을 잘해서 삼림을 보호하고 싶다.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은퇴할 때까지 전망대를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주채근은 약간은 흥분되여 말하는 아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는 아들에 대한 자랑이 담겨 있었다.

묵묵히 삼림을 지키고 있다.

2021년 말까지 룡강삼림공업그룹의 림지면적은 2011년 말 545만 9900헥타르에서 557만 6800헥타르로, 삼림 피복률은 83.04%에서 84.71%로, 총 삼림축적량은 5억 3700만립방미터에서 7억 1800만립방미터로, 헥타르당 축적량은 9립방미터에서 120.9립방미터로 증가했다. 중국 산림과학원의 평가에 따르면 2020년 말까지 산림 및 습지자원 자산 총 가치는 2조 8000억원에 달한다.

바로 주채근, 왕류양과 같은 수천만명의 룡강 삼림로동자들이 있기에 대대로 바통을 이어받아 견고한 록색 '강철장성'을 쌓아 조국의 동북 '대곡창'을 애틋하게 지키고 있다.

출처: 흑룡강일보

편역: 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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