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퉁불퉁 가시밭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벅찬 무게 감당하며
무작정 달려야만 했다
아름다운 풍경도
바람처럼 스쳐지나며
무작정 달려야만 했다
눈 먼 못에 찔리고
날을 세운 유리쪼각에 갉히워
심장을 저미는 아픔도
진통제 한알로 마무하고
밑창이 뚫릴 때까지
무조건 달려야만 했다
몸속 혈관의 길이만큼
길다란 길에 휘뿌린 구슬땀에
검은머리 하얗게 헹구었다
만신창이 된 몸 멈추고 나니
또 다른 멍에 지워진
늙으신 부모님
타이어 바퀴는 오늘도 굴러간다
굽은 등에 손군들을 태우고
덜커덩- 덜커덩…
군고구마 장수
뜨거운 연탄불가마 실은 삼륜차
백화점 옆 길거리에 정박해 있다
역병이 잘 나가던 식당도 빼앗아가고
당신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삼륜차에 매단 확성기는
목 추기지 않은 채 하던 말만 곱씹는다
-따끈따끈한 군고구마입니다
달콤하고 토실토실한
산동 노란속 고구마입니다…
누구의 손에 들려가는
군고구마 한 조각이
한 가족의 밥이 되고
대학 다니는 딸애의 학비 되고
허약한 로모의 약값이 되고…
군고구마 한 봉지가
온가족의 온기를 덥힌다
탕- 탕-
모질게 겨울을 치는
군고구마 장수의 발 구르는 소리
십리 밖까지 울려퍼졌다
하천
구불구불 길다랗게
지구의 허리를 두른
은빛 생명의 태줄
그 태줄에 데룽데룽 매달린
지구촌의 촌락과 도시
숨을 쉬고 단즙을 마신다
아무리 자라도
모체를 떠나지 못하는 태아
바다가 마르는 날까지
자를 수 없는 태줄
너도 사랑이 고팠구나
허구한 날 물만 주었더니
해마다 꽃을 피우던 아마릴리스 넌
작년에는 꽃 피우기도 건너뛰였지
올해는 언제 꽃을 피울가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웃거려도
새초롬히 시치미를 떼는거야
기다림에 내목이 꽃대처럼 길어졌는데
너의 꽃대는 내밀줄 몰랐지
그제야 네게 필요한 영양제를 사서
뿌리 근처에 묻어주었더니
거짓말처럼 미끈한 꽃대를 쑥 내밀고
터지려는 웃음 참느라
얼굴이 능금처럼 붉어졌지 뭐야
필요할 때마다
곁에 있는 당신의 손길처럼
네가 꽃 피우는 일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나의 오만이였음을…
너도 사랑이 고팠구나
당신도 그랬겠다
별처럼 환한 네 얼굴 마주하니
내 이마가 자꾸만 자꾸만 숙여진다
감자꽃
시골처녀같은 때 묻지 않은
수줍은 미소 하얗게 피워올리면
웃음이 가시기도 전에
농군의 손끝에 목 꺾이는
애달픈 신세
녀자로 살고 싶어도
주렁주렁 태줄 물고
젖 빠는 귀여운 살붙이들
숙명처럼 끌어안고
엄마로만 살아가야 하는
행복한 슬픔
낮에는 해볕과 바람과 비물로
달콤한 젖을 빚고 또 빚고
내 자식 추울세라 더울세라
자궁 깊이 고이 보듬었다
밤이면 해와 달의 이야기
자장가로 들려주며
애지중지 키운 애들
달덩이 처럼 토실토실
감자꽃은
하늘의 뭇별 되여
함초롬이 쌈박이며 미소 지었다
거대한 자궁
겨울은
대지 엄마의 임신기다
제일 힘들고 고달픈
시린 손 호호 불며
이가 덜덜 떨리는
설한풍 견디느라면
겨울도 꼬리를 내리더라
새들의 축가 속에서
꽃향기 면시포 쓰고
울긋불긋 고운 주단 펼칠
출산 경축 잔치의 그날
손 꼽아 기다린다
거대한 자궁 속에서
생명과 음악과 그림이
꼼지락 거리며
평화롭게 자라고 있다
온다
바야흐로, 다가온다
출산의 그날이 다가온다
가시 뽑기
어쩌다 약지에 박힌 가시
심장을 콕콕 찌른다
돋보기와 확대경이 동원되여
겨우 뚜져냈다
티끌만한 가시에도
꼼짝 못하는 인간이다
누구의 가시돋친 말이 가슴에 박혔다
다육의 잎에서 새싹이 돋 듯이
가슴에 미움이란 가시가 돋는다
확대경으로 내 가슴을 들여다보았다
가시가 가슴벽 긁고 찔러
멍들고 으깨지고 피고름이 흐르고…
치유의 길은
가시를 뽑는 일밖에 없지 않는가
미움이란 가시를 빼고나니
텅 빈 가슴에
별빛이 쏟아져 들고
새소리 정겹기 그지없었다
워낙
가시 뽑기는
삶의 기술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