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항련조각원, 항미원조공훈원 세운 량립강 이야기

영웅을 존경하고 숭배하며 영웅과 영렬 정신을 기리는 것은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우리 부모님, 우리 자녀들의 가장 소박한 꿈이다. 중화민족은 고난을 겪은 민족이며 고통 속에서 일어선 민족이다. 수많은 영렬들이 앞다투어 자신의 몸과 피로써 광명의 길을 열었고 우리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바로 이 영웅들의 노래가 모인 대합창이다. 력사는 잊혀서는 안되며 잊을 수도 없다.
10여 년간 동북의 깊은 산속에서, 높은 산봉우리에서, 끝없는 들판에서 항일영웅들과 항미원조 영웅들을 위해 집을 마련하고 그들을 위한 기념비를 세운 량립강은 천만 재산을 모두 영렬 공훈원 건설에 쏟았다.
그는 1974년 화룡시 복동진의 한 외진 농촌에서 태여나 5살부터 소를 돌보기 시작했고 7살에는 나무를 주워 오고 패는 법을 배웠다. 또 성적이 우수하여 항상 반장을 맡았으며 방학만 되면 산에 가서 약초를 캐 팔아 학비를 냈다. 11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자 집안은 더욱 빈곤해졌고 방학 때마다 량립강은 쌀밥을 먹기 위해 50킬로미터 떨어진 큰아버지 집을 찾군 했다. 큰아버지네는 쌀과 옥수수 농사를 했다. 그보다도 큰아버지는 항미원조전투에 참가한 로병이였는데 그가 찾아갈 때마다 군대이야기, 감동적인 영웅이야기, 아홉번 죽을 고비를 넘긴 전설, 백성의 바늘 한 땀도 취하지 않는 군대규률, 가난한 동포를 돕던 이야기 등을 들려줬다. 이때부터 량립강은 영렬과 군인들에게 각별한 존경심과 숭배심을 품게 되였다.

가난한 집 아이가 일찍 철 든다고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닥치는 일은 다했는데 처음으로 탄광에서 갱도 작업을 했다. 당시 탄광에서는 사고가 빈번해 부상과 사망이 잦았다. 그러다 그는 석탄 수레에 발이 깔려 세 발가락과 발등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어 9급 장애인이 되였다. 그후 생계를 위해 그는 친척이 운영하는 소규모 탄광으로 가서 석탄을 등에 짊어졌다. 한 광주리 석탄은 약 80~100근 정도였고 지하에서 등에 지고 지상으로 운반해야 한다. 갱도는 약 50미터 깊이에 1.5미터 너비였으며 석탄 한 광주리를 등지면 1모 5푼을 벌 수 있었다. 그는 100광주리를 채우지 않고는 퇴근하지 않았고 이러한 투지와 끈기는 고난 속에서 단련된 것이였으며 여기에서 이후 그어떤 파란만장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인생의 탄탄한 기초를 닦았다. 그후 량립강은 연길에서 가축사료 창고에서 짐꾼으로 일해도 봤고 택시를 운전하기도 했다. 또 만두가게를 열기도 했으며 탄광에서 석탄을 운반하기도 했다. 그러다 2001년에는 관광업계에 들어가 공부했고 2005년에는 자신의 연변산수려행사를 설립했다. 2008년 연길-광주-해구 전세기 로선을 개통시켰으며 2009년 연변 최초의 향항•오문 전용렬차 기획자 중 한명으로 전용렬차를 열기도 했다. 이때 량립강은 이미 연변에서 유명세를 탄 기업가로 성장했다.
2011년, 량립강은 정부 호응에 따라 고향 화룡으로 가 창업을 시작했고 화룡환락곡 관광지에 투자해 건설을 진행했다. 이는 화룡 림업국 내 첫 항목이였으며 해당 소재지는 홍기하 항일 3전 전적지이기도 했다. 당시 그곳에서는 아군의 피해 없이 30여 명의 일본괴뢰군을 생포하는 빛나는 전과를 올린 적 있었다. 2016년 량립강은 화룡시 정협 상무위원으로 선출, 정협 활동을 통해 많은 동북항련 전문가와 학자들을 알게 되였다. 본격적으로 당의 위대한 혁명력사 공부를 시작했고 영웅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들은 어린 시절의 꿈을 다시 불타오르게 했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몇 년간 그는 건설자금을 투자하기 시작했고 영웅의 고향을 탐방하며 수많은 감동일화와 소중한 사료를 수집했다.
“사실 우리는 동북항일 몇몇 영웅의 이름만 알고있을 뿐 동북지역에서 항일전쟁 중 희생된 3만명 이상의 렬사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나는 계속하여 기록보관소나 렬사명부에 있는 렬사들의 이름과 사적을 발굴하고 홍보해 후세가 그들의 혁명 정신을 존경하고 계승하게 하고 싶다.” 그는 수년간의 고생 끝에 어느 정도 기반을 마련했지만 자신이 실현하려는 꿈과 경제적 기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으며 홍색문화 관광지를 건설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다년간 고된 노력끝에 2021년, 총 투자액 1100만원 이상의 적룡강(赤龙岗) 동북항련조각원이 정식 완공되였다. 조각원은 화룡시 백리촌 대마록구 하변에 위치해 있으며 장백산 주봉에서 직선거리 40킬로미터 떨어졌다. 화룡시림업국 원 장삼령림장의 폐허가 된 부지 위에 낡은 것을 고쳐쓰고 페허를 신비롭게 변모시켜 기존의 계곡과 풍경관광 외에 새롭고 신선한 홍색력사 관광지를 만들어냈다.
적룡강 동북항련조각원은 총 8개 구역으로 구성된 가운데 면적 2800평방미터인데 길이 100미터, 너비 28미터, 높이 2.5미터의 사합원식 담장이 세워졌으며 동북 지역에서 항일전쟁에 참전한 군인, 지방 당조성원, 항일전쟁을 지원한 평민 등 당사, 문사 및 퇴역군인사무부서에서 확인한 약 1만명의 이름이 벽에 새겨져 있다. 이들 가운데는 흑룡강성과 료녕성은 물론 동북 외 기타 성에서 온 영웅들도 많았다. 옆에는 무명 항일 영렬 기념비가 세워져있다. 동북항련조각원 장랑에는 양정우, 조상지, 시세영 등 200명의 동북항일 영웅 조각상이 세워져있다. 또한 민정부, 퇴역군인사무부에서 유명 항일 영렬로 지정된 동북 지역 162명의 조각상들과 조일만, 랭운 등 100명 녀영웅의 조각상들도 세워져있다. 그밖에 항일전쟁 시기 대표적인 14개 특수 가정의 조각상이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항전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여기서 ‘14’는 ‘14년간의 항전’을 상징한다.
그리고 항미원조공훈원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온 뭇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항상 “이 비장한 력사를 형상화하여 자손만대가 영원히 기억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자 사명”이라고 말하는 량립강은 얼마전 화룡시에서 연길시로 무대를 옮겨 연길시에서 8킬로미터 떨어진 모드모아(梦都美)에 항미원조공훈원을 세웠다. 항미원조공훈원에는 57명의 특급과 1급 전투영웅 조각상과 502명 영웅이름을 박은 이름벽이 있다.
다년간 홍색문화 건설에 전념하면서 량립강은 1600만원 넘는 재산을 투자했고 집과 차, 차고까지 전부 팔았다. 항주 국가청소년배드민턴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학비조차 낼 수 없어 안해는 항주로 가서 체육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학비를 벌기도 했다. 또한 2022년 코로나 기간 40일 봉쇄시기에는 주머니에 17원밖에 없어 1원짜리 라면 15봉지로 버티던 때도 있었다. 어느날 아이의 코치는 홍색문화 전승을 위한 그의 헌신에 감동되여 가난에 허덕이는 안해와 아이에게 코치실 한칸을 제공했다는데 그 일에 량립강은 며칠을 울었다.
“최근처럼 겨울의 동북대지는 흰눈으로 덮이고 겨울바람이 매서워 이 지역의 혁명은 엄청난 고난의 련속이였다. 확고한 신념과 정신 없이 승리는 불가능하다. 나 역시 이 나라의 평범한 한사람이며 마음속 확고한 신념을 위해서는 전 재산을 다 잃는대도 후회없다. 국가와 사회에 영원한 정신적 자산을 남긴 영렬들을 위해 가원을 만드는 것이 나의 작은 꿈이다.”
현재에도 집 없이 살고 있지만 뭇 영렬들의 집을 만든 그는 어쩌면 가는 곳마다 그의 집이 아닐가 싶다. 요며칠 그는 호남성에서 모주석 탄신 132주년을 기념하면서 다시금 자신의 신념과 꿈을 다지고 있다.
/류설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