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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우리 집- 마성산

2023-07-04 11:03:30

우리 집이란 나를 포함한 여러 식구들이 살기 위하여 지은 공간적인 측면에서의 건물을 뜻하기도 하고 가족을 이루고 생활하는 사회적인 측면에서의 우리 가족을 뜻하기도 한다. 글의 제목에서 우리 집은 우에서 말한 두가지 뜻이 다 포함되여 있음을 밝혀두는 바이다.

우리 부부가 갓 결혼했을 때 집이 없어 학교의 단칸짜리 낡은 창고를 림시 빌려 들었었다. 벽이며 천정을 온통 도배했는데 물 마시러 왔던 꼬마 친구들이 스산하던 창고 면모가 일신한 것을 보고 저희들끼리 “모주석 집 같다”며 감탄하던 일이 생각난다. 그 해 큰 형님의 덕분으로 토벽집을 짓고 들었다. 헛간, 정주간, 구들방으로 된 삼간 구조였다. 서쪽은 헛간인데 안에 닭장을 만들어 헛간에서 직접 닭알을 꺼낼 수 있게 설계하였고 가운데 칸은 부엌간으로 바당에다 감자움을 파서 감자, 무우를 넣어두도록 하였다. 동쪽은 구들방으로 제일 중요한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당시 제일 중요한 시설이란 이불 두채와 가죽트렁크 두개 그리고 밥상이 전부였다. 구들의 크기는 십오평방쯤 되였는데 둘이서 살기엔 넉넉하고도 남았다. 가을철 새 집에 들었을 땐 몰랐었는데 겨울이 닥치니 웃풍에 코가 시려 바로 잘 수가 없었다. 생각다 못해 정주간과 구들방 사이에 새끼줄을 촘촘히 띠우고 종이를 여러겹 발라 웃풍을 막았다. 종이 벽은 견고하지는 못해도 찬 기운은 괜찮게 막아주어 그런대로 무사히 겨울을 날 수 있었다. 이듬 해엔 갈을 엮어대고 흙을 발라 어간벽을 만들고 타원형의 유리창을 만들어 부엌간과 구들방에서 공동히 전등불빛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농촌 살림이라 남들이 하는 일은 우리 집에서도 흉내내느라 했다. 병아리를 사서 닭을 길러보았고 새끼 돼지를 사서 돼지를 길러보기도 했다. 남들이 벽바르고 이엉 얹으면 우리도 벽 바르고 이엉을 얹었고 남들이 흙벽돌을 만들어 구들장 훑어내면 우리도 그렇게 했다. 비록 풍족한 살림은 아니였어도 아기자기하고 행복했다. 초가 삼간의 구석구석에 우리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해마다 이엉을 얹고 용마름 틀고 동여맸고 해마다 흙을 이겨 한줌한줌씩 바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태에 한번씩 구들 고래를 훑어서 겨울을 뜨뜻이 나도록 했다. 이렇게 살아가는 중에 우리 부부는 어느덧 어린애 둘을 가진 엄마 아빠로 둔갑하였다. 어린애 둘은 우리 가족에 더없는 생기와 활력이 넘쳐나게 하였다. “울할머니 기르는 닭은 뭘하니 뭘하니 매일매일 알을 낳지 그렇지 그렇지 매일매일 알을 낳고 에헤야 에헤야 꼬꼬꼬꼬 노래한대요 꼬꼬꼬꼬 노래 한대요 한대요”, “토끼와 거부기 달을래기 한대요 누가누가 먼저먼저 산꼭대기 오를래 토끼는 깡충깡충 잘도잘도 뛰는데 거부기는 엉기엉기 한발두발 기겠죠”와 같은 동요가 다름 아닌 우리 집에서 울려퍼졌다. 세살 터울의 두 오누이가 서로 뒤질세라 겨끔내기로 불러대는 통에 집안은 언제나 웃음꽃이 넘쳐났다. 거기다가 안해가 재봉침과 감침재봉침을 갖춰놓고 재단하는 통에 집안은 진짜 사는 멋이 넘쳤다. 거기다가 쌀을 팔아 십이인치 흑백 텔레비를 샀는데 가족의 문화생활에 이채를 돋구었다. 네식구에 십오평방의 단칸 구들방은 좀 작기는 했어도 애들이 자라는데는 아무런 영향이 없으리만큼 편하고 행복하기만 하였다. 내가 려명소학교로부터 중학교에 전근하게 된 것은 86년도였고 91년도엔 16년을 함께 해오던 정깊은 려명 초가삼간과 리별하고 중학교 부근으로 이사오게 되였다. 당시 안해가 려명초가에서 재단으로 얼마간의 돈을 벌었는데 그 덕에 학교에서 분배해준 집에 벽돌집을 붙여 지을수 있었다. 그 땐 젊은 나이인지라 기초 파는 일 따위는 겁나지 않았다. 통이 크게 자체로 기초를 파고 근 사십평방 되는 벽돌집을 붙여 지었다. 이 집의 구조를 보자.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십오평방 좌우의 주방이고 동쪽엔 각기 륙평방 좌우의 침실과 창고가 남쪽과 북쪽에 어간벽을 사이두고 자리잡았다. 주방 서쪽문을 열고 들어서면 널다란 구들과 바당이다. 바당엔 퍼즐매트(拼接垫)를 맞춰 깔아 구들처럼 편하였다. 바깥 집터 주위는 철망을 둘러 외계인이 함부로 드나들 수 없도록 단속되여있었다. 보안 조치가 허술했다간 도적맞히기가 일수였다. 이사온 이듬해에 터밭에다 마늘을 심었는데 바자가 허름하여 도적이 들어와 마늘을 뽑아간 교훈이 있었다. 아무리 없어도 바자만은 든든하게 꾸려야겠다는 생각이 앞서게 되여 철망을 둘렀다. 바자굽에 나리꽃 그리고 모양이 고운 비슬나무를 옮겨심고 웃부분을 뽈모양으로 가꾸었고 산에 가서 머루를 파다가 마당에 심었다. 나리꽃, 동그란 비슬나무 지붕 기와를 뒤덮은 머루잎과 그밑으로 드리운 머루다래는 왕성한 생명력을 과시하며 찬탄과 부러움을 자아내군 했다.

세월은 빨리도 증발하여 중학교 근처에 온지도 십륙년이 지났다. 이 십륙년은 우리 가족을 놓고 보면 천지개벽의 십륙년이였다. 큰 애는 언녕 한국으로 가 가족을 이루었고 둘째는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사에 출근하고 있으며 안해의 짠지장사로 경제적 여유가 생겨 부러운 것이 없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안해가 짠지장사를 그만두었고 나도 퇴직한 것이였다. 그러니까 우리는 부담없는 홀가분한 삶을 향수할 수 있었다. 허나 가혹한 경제 시대는 마음 놓고 편한 삶을 살도록 놔두지 않았다. 우리 부부도 십륙년을 두고 알뜰히 가꾸어오던 정든 집을 떠날 결심을 내리게 되였다. 서쪽에 내손으로 손수 지은 석탄 창고며 인풍기가 돌지 않으면 올라가던 굴뚝과 석면기와, 집주위에 설치한 철망이며 바자굽의 나리꽃, 비슬나무, 머루숲 등은 잊을 수 없는 우리 집의 대표적인 표적이였다. 안락한 생활 테두리에서 벗어나 모질고 거친 세상의 어려움을 겪어야 할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저없이 손때 묻은 정든 집을 떠나 아리랑고개를 향해 톺기 시작하였다. 중학교에 이사온지 십륙년 만인 2007년 가을에 할빈에 정착하여 안해는 가정부로, 나는 교편을 잡고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일년반 지나 운수 좋게도 안해가 한국 갈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로부터 우리 부부는 삼년간 견우 직녀 생활을 하였다. 삼년간의 한국 식당집 알바에서 원래 오십키로가 넘던 안해의 체중이 사십키로로 줄었다. 귀국하여 택시에서 내리는 안해를 보는 순간 쓰려나는 내마음을 어쩔 수 없었다. 가방을 메고 달랑 내리는 왜소한 유치원생을 방불케하는 안해였다. 체격은 왜소해도 정신 상태는 분발하였다. 가족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친 안해였고 그런 대가로 앞으로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둥지를 짊어지고 온 안해였다. 인젠 견우 직녀 생활을 마무리짓고 따뜻한 우리 집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어디에다 우리 집을 잡을가? 우리 부부는 고민 끝에 고향 사람이 살고 있는 라북 홍광아파트를 선택하였다. 팔십사평방짜리 아파트, 문을 열면 널직한 거실인데 깨끗한 쏘파가 반겨주고 쏘파 남쪽엔 컴퓨터가 놓여있고 쏘파 북쪽엔 장식용 술장, 랭동고, 밥상이 순서있게 배렬되여 있다. 거실의 남쪽 두칸은 침실과 서재로 쓰이고 거실 서북쪽은 주방이고 서쪽은 화장실이다. 짜임새와 구조가 괜찮은 아파트다. 5층이여서 좀 높기는 하지만 습관되여 괜찮았다.

돌아보면 우리가 살았던 집은 모두가 버리지 못할 뜨거운 정이 슴배여있다. 도배로 장식한 학교의 낡은 창고, 십륙년을 살던 세칸짜리 초가, 중학교 부근의 붙여 지은 벽돌집, 나중에 선택된 홍광아파트. 그 어느 집이나 우리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없다. 가석한 건 홍광아파트를 제외한 학교의 낡은 창고나 려명에서 십륙년간 살던 삼간 초가나 중학교 부근에 붙여 지은 벽돌집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흔적은 사라졌어도 우리가 살았던 집에 대한 미련만은 버릴 수 없는 건 공간으로서의 우리 집에 대한 애착심에서 생겨나는 정감 때문일 것이다. 또 사회적 측면에서의 우리 집을 보면 가족 성원들의 품질이나 됨됨이가 크게 기울지 않고 자기 맡은바 일을 잘해나가고 별 탈 없이 잘 나간다. 한마디로 우리 집은 가족 성원의 행복의 뿌리이고 삶의 주유소이며 따뜻한 보금자리의 역할을 착실히 해왔다. 온갖 세파의 부대낌을 헤치고 여기까지 걸어온 우리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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