黑龙江日报朝文版
国内统一刊号: CN23-0019  邮发代号: 13-26

문학

  • ​오늘은 2021년의 마지막 하루, 래일이면 고래희에 들어선다. 인간칠십 고래희란 사람이 칠십살까지 사는 일은 예로부터 드물다는 뜻으로 저명한 시인 두보가 인생의 짧음을 통탄하여 지은 시에서 남긴 말이다. 십년전만 해도 고래희는 남의 일처럼 여겨왔었다. 인젠 결코 남의 일이 아닌 제 발등에 떨어진 불로 되여버렸다. 엎지른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듯이 이 발등의 불은 도저이 꺼버릴 수 없다. 꽃잎 흩날리는 강변을 술에 취해 걸으며 한탄했던 두보의 탄식이 진짜 남의 일 아니다. 어느덧 한해를 보내고 고희를 맞게 된다. 그래서인지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 한구석엔 아쉬움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뒤를 돌아보면 먹고 싸고 잔 것 외에 해놓은 일의 흔적이 어떤 것인지 잘 알리지 않는다. 해놓은 일이 없어서인가? 아니면 해놓은 일이 너무 적어서인가? 분명 두주먹 움켜잡고 달려왔건만 뒤돌아보면 해놓은 것 보이지 않는 건 왜서인가? 인생이란 본래부터 이런 것인가? 이런 의문에 해답을 줄 수 없는 나다.
  • 선녀의 깨끗하고 옥같은 살결일가 락엽송 나무들이 앞서서 부지런히 뛰여 오다가 못볼 것을 보았는듯 흠칫 발걸음을 멈추고 빨갛게 얼굴 붉히며 공연히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멀찍히 뒤에 떨어진 봇나무 총각들은 앞으로 가보고 싶은듯 까만 눈 반짝이며 나무 사이를 비집고 있다 방울방울 선녀의 신비한 살점 같은 물 손 잠그어 보면 매끌매끌 부드러운 감각이 온몸을 야릇하게 쓸어준다 여기 으슥히 깊은 습지에 아름다운 알몸을 숨긴 선녀가 인간들 시선에 부끄럽게 폭로되여 파란하늘 깊게 파며 옷 한장 내려주기를 고대하고 있는듯 수집어 하는 그 모습 더욱 신기하고 매혹적이다
  • “나에게 군대삼촌이 있다.” 소학교에 다니던 시절 나에게 가장 큰 자랑이 있었다면 군대에 다니는 6째 삼촌이였다. 군복을 입은 멋진 모습만이 아니다. 그때는 군대라고 하면 아이들에게는 가장 큰 신망의 대상이였다. 일년에 한두번이나 볼까 말까한 영화를 보아도 항일전쟁 영화였고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그림책들도 철도유격대나 안새유격대와 같은 그런 것이였으니 군대란 이름만큼은 누구도 넘보지 못할 그런 무한의 위력을 갖고 있었다. 군대라고 해야 어쩌다가 한번 마을을 지나가는 군인의 모습을 보는 것이 전부였던 그 시절, 내 삼촌이 군인이고 마을에서도 유일한 군인가족이란 것보다 큰 자랑은 없었다. 학교에서 부모가 교원인 아이들보다도 ‘군대삼촌’이 있는 내가 더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있었던 그 리유이기도 하다.
  • 꿈에 그녀를 보았다. 꿈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뽀송한 얼굴에 솜털이 귀여운 녀자애였지만 분명히 내 소학교 동창생이라고 했다. 그러고보니 또 동창생이 맞는거 같기도 했다. 동창중에 이쁜 녀자애가 많지 않아서 기억에 남는 친구였으니깐. -근데 너 늙지 않았네? 나이 오십에 아직도 애기 같네? -히히~ 너도 안 늙었어. 니가 늙었다고 생각하니 늙은거지 내 보기에는 아직도 안 늙었어. 그녀의 해맑은 웃음이 오얏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너 결혼했어? -아니, 널 기다렸어… 뭐야? 난 결혼하고 아이 둘까지 있는 몸인데 내가 결혼한 걸 몰랐단 말인가? 근데 속이고 싶었다. 결혼했다는 말을 꺼내기가 웬지 모르게 꺼려졌다.
  • 버드나무는 강가의 둔치에 뿌리를 내리고 흘러가는 강물과 대화를 나누며 년륜을 새겨간다. 버드나무에는 오랜 세월 자기를 키워온 흔적인가 옹이가 우둘투둘하다. 그 옹이에서 사람들은 버드나무의 수령과 지나간 세월의 발자국소리를 듣게 된다. 강은 둔치에 버드나무가 있는 것으로 하여 안존하고 봄이면 푸른 옷을 입는 나무에게 수액을 푸짐하게 공급한다. 강과 나무는 친구이고 둔치의 버드나무에 버들꽃이 필 때면 강물은 기슭을 핥으며 출렁출렁 꼽새춤을 춘다. 강가 둔치에 있는 버드나무는 강물의 애무를 받아서인지 름름하고 미끈하다. 봄이면 남먼저 봄소식을 알리는 버드나무는 일상에 쫓기던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만든다. 버드나무는 예부터 사악한것을 물리치는 벽사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버드나무가 벽사력을 가진 리유는 첫째로 버드나무의 한자인 류(柳)는 목(木)과 묘(卯)를 합한 글자로서 묘(卯)는 동방(東方)이며 동방은 곧 춘양(春陽)을 의미하기 때문에 음(陰)을 굴복시키고 백귀를 물리칠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둘째는 버드나무의 잎의 모양이 날카롭고 뾰족하기 때문에 귀신은 이것이 무서워 접근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예로부터 가을은 수많은 문인들의 붓끝에서 싫증나도록 묘사되여왔다. 가을추(秋)를 보면禾는 곡식화로서 벼를 가리키고火는 불화로서 뜨거움을 말하는데 뜨거운 해살에 익은 벼를 거두는 계절임을 나타낸다. 기상학적으로는 보통9~11월을 가을이라고 하나 절기상으로는 립추부터 립동 사이를 일컫는다.9월 중순 이후 대체로 가을비가 기본상 끝나고 맑은 날씨가 계속되고 강수량이 줄어들고 습도도 낮아지며 산야는 단풍과 황금빛의 오곡으로 뒤덮이게 된다. 늦가을이 되면 낮의 길이와 일조 시간이 짧아지고 기온이 차차 내려가며 아침저녁으로 제법 귀찮을 정도로 썰렁해난다. 말그대로 썰렁한 가을 기분을 자아낸다. 가을철엔 추석과 같은 큰 명절이 끼여 이채를 돋구는가 하면 봄철부터 다사했던 농사일을 한단락 끝내고 좋은 날씨를 택하여 축구경기, 륙상경기, 씨름, 그네 등 민속색채가 다분한 경기를 벌여 다분한 농사일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보기도 한다. 가을은 농사의 결실을 보는 수확기면서 추수 감사의 민속 행사가 많은 계절이다. 그중에서도 큰 명절인 추석을 꼽을 수 있다. 추석이 오면 멀고먼 지방에 흩어져 살던 가족성원이나 가까운 친척들이 모여 조상을 모신 산소를 찾아 성묘도 하고 오손도손 모여앉아 명절음식을 먹으면서 그립던 정을 나누기도 하는 등 민속행사가 많다.
  • 형님의 예측은 빚나가지 않았다.'중한판점'을 개장해서3년이 지난1994년에는 어벌차게 그 당시로 말하면 목돈이라 할수 있는16만원을 들여 농부산물시장가와100여미터 상거한 거리에 있는400여평되는 건물과 집터주위까지 사들였다. 단층집을 개조하여 대청은30여개 상을 놓을수 있는 홀로 만들고 사들인 집터에다는 새로 집을 이어지어 노래방까지 꾸려놓았다. 하여 술을 마시고 먼곳에 옮기지 않고 집접 노래방까지 행할수 있는 우세로 많은 손님을 끌었다. 이렇게 몇년간 장사가 호황이던 것을 멈추고 또 어벌차게 단층집 건물을 허물고2000여평이 되는5층건물을 일떠세우는 장거를 보였다. 그것이2002년, 어쩌면 그 때는 모든 일들이 술술 풀렸다고 해도 거짓말이 아니다. 단층집으로부터5층건물이 일어 나기까지 얼마마한 고생을 했는지는 그 자신을 내놓고 누구도 모르리라.
  • '화목'이란 말을 농촌에서 지금도 쓰는지 모르겠다. 어릴 때 고향마을에 있을 때10월이 되면 화목 주간이 있었다. 화목이란 불을 땔 감 즉 땔나무라는 뜻이다. 내가 어릴 때 농촌에는 석탄을 때는 집이 극히 적었다. 집집마다 온돌방이 있는데 불 땔 감이라고는 들에 나는 새나무, 쑥대, 그외에 생산대에서 탈곡이 끝난 다음 나누어 주는 벼짚 북데기였다. 우리가 사는 고장은 버덕이라 장작이 거의 없었다. 또 그 때의 살림형편으로 개인집에서 석탄을 사서 땐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였다. 지금 은 벼짚도 안때고 거의 밭에서 태워버리지만. 소가 절반 로동력이였던 그때 벼짚은 생산대의 소먹이로 매우 귀중한 존재였다. 그리고 어쩌다 집집에 나누어주는 벼짚은 부업으로 가마니를 짜서 돈잎을 만들다나니 언제 부엌아궁이에 들어갈 것이 있었겠 는가? 화목주간이 되면 우리집에서는 아버지를 비롯해서 오빠, 언니하고 점심을 사가지 고 새밭에 간다. 엄마는 휴식 짬에 먹으라고 작은 사과랑 점심 가방에 넣어주군 했다. 그때 내나이 열두어살이라 새나무는 베지 못하고 묶어놓은 나무단이나 나르면서 점심참을 축내는 것이 고작이였다. 하지만 나무단을 나르는 것보다 더 신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무져놓은 나무무지에서 뒹굴며 노는 것도, 풀떡 풀떡 뛰는 베짱이를 잡는 것도 아닌 새밭에 물이 고인 곳에서 와글와글한 고기새끼들을 줏는 일이였다. 그래서인지 화목주간은 나의 동년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 당신은 민들레를 즐기는가? 난 민들레를 좋아한다. 우선 민들레는 순수한 자연의 먹거리를 선사한다. 민들레는 가장 이른 봄부터 겨우내 얼고 잠들고 굳어진 흙 속에서 자기 속에 간직했던 에너지를 방출하여 오불꼬불 틈새를 비집고 기어코 땅우로 올라와서 인간들에게 엽록소를 선사한다. 봄임을 광고한다. 민들레는 아마 태여나는 날부터 꽃망울을 잉태하고 있는 것 같다. 옛날에는 멋 모르고 꽃망울을 버리고 이파리만 먹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모조리 먹는다. 날 것으로 쌈을 싸거나 초장에 찍어 먹으면 민들레의 개성적인 맛이 더 선명하고 양념에 무쳐 먹어도 그저그만이다. 그렇게 입맛이 거뿐할 수가 없다. 밥도둑이다. 실로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를 지경이다.
版权所有黑龙江日报报业集团 黑ICP备11001326-2号,未经允许不得镜像、复制、下载
黑龙江日报报业集团地址:黑龙江省哈尔滨市道里区地段街1号
许可证编号:23120170002   黑网公安备 23010202010023号